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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호 친애하는 나의 친구 조지에게. (Dear My Friend, George)

  • 작성일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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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8112
한호택

명예기자 한호택


* 공모글 예시 중에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게 쓰는 편지’에 대입하여 풀어냈습니다.

* 아래 링크의 음악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K69cGAwks


친애하는 나의 친구 조지에게. (Dear My Friend, George)


조지. 자네가 폴란드로 떠난 지 벌써 7개월이 되었군. 여기는 이제 장마가 막 시작되어 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어. 몇 주 전부터 꼭 두 마리가 한 쌍으로 날아다니는 이상한 날벌레가 잔뜩 출현해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것도 곤란할 정도였는데, 장마가 시작된 이후로 물에 약한 그 녀석들이 크게 줄어서 장마에 감사하고 있다네. 방역에 대한 논의와 민원이 여러 차례 오가고 있었지만, 벌레들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


자네가 새로 구했다던 일자리는 버틸 만하길 바라네. 물론 자네의 마음이야 항상 다른 곳에 있어서 영 편하진 않겠지만.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괴로움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네.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딴섬에 홀로 있는 그 느낌.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 자네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느낌이지.


그래, 나야말로 자네의 그 ‘낯선 느낌’을 잘 이해할 사람 아닌가. 알다시피 나는 3년 전에 A 대학을 그만두었고 새로 옮긴 B 대학도 인제 그만두려고 하네. 두 대학 모두 재학 당시 전공이었던 컴퓨터공학은 내가 꾸준히 공부해 왔고 그만큼 성과가 잘 나오던 분야임을 떠나서, 흔히들 말하는 ‘미래가 어느 정도는 보장된’ 분야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어. 하기야 만약 내 아들놈이 잘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음악을 하겠다는 말 따위를 하면, 과연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군가에겐 내 도전이 ‘꿈꾸는 청춘’이라는 이미지에 스스로 취해 감상적인 소리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세상 그 누가 와도 이미 결심한 나의 마음을 바꿔놓을 순 없었어. 부모님도 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찍이 그런 시도를 접은 것 같아. 자네에겐 내 결론 – 음악을 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는 것만 전달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


올해 2월, 나는 B 대학의 신입생 환영 행사에 참여했네. 그건 정말이지 우발적인 일이었어. 평소처럼 나는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는데, 개미처럼 줄지어 강당으로 이동하던 학생들을 발견했지. 그 학생들은 생긴 모습은 모두 달라도 하나 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처음 와보는 곳에서 강당을 찾느라 눈동자가 쉼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는 것이야. 선배 된 나로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네. 아무튼 도서관에 가는 길에 강당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행렬에 동참하여 따라가고 있었고, 결국 강당 앞까지 와 버렸지. 강당 입구에는 어떤 선배 – 내겐 선배가 아니겠지만 – 가 줄 선 학생들에게 일일이 학과를 물어보고 어디 어디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었지. 나는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음악학부라고 대답했어. 그처럼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속으로는 꽤 놀라워서 그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되었네.



그렇게 위층의 어떤 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주변의 신입생들에게 말을 걸었네. 나는 예전부터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친해져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어.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없어서 입이 근질거렸거든.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를 버릴 생각이 없었네. 그중 나는 ‘리아’라고 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어. 대부분 신입생은, 아직 그런 대화가 낯선지, 내가 말을 걸면 피하려거나 어딘가 어색해하는 구석이 있었는데 그녀만큼은 내 전공 이야기를 듣고 먼저 찾아와서 내게 말을 걸었지.


그리고 3월, 학기가 시작되었어. 나는 호기심에 음악학부의 전공 수업을 수강했는데, 그곳에서 (나와는 달리) 진짜로 음악을 전공하는 리아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 나는 지난번에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고 우리는 매주 수업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자신의 친구 한 명을 소개해 주겠다며 같은 수업을 듣는 어떤 사람을 데려왔어. ‘에그버트’라고 하는 그는 아주 큰 키는 아니지만 건장한 체격에 딱 벌어진 어깨 꼿꼿이 선 허리와, 졸려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빛나는 눈을 가진 청년이었어. 나는 그를 보자마자 우리가 친해질 것임을 깨달았지. 나는 살면서 나와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는데, 그게 바로 자네와 에그버트였어. 그래, 언젠간 자네에게도 이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군. 아마 자네와도 잘 맞을 거야.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중에는 매번 옆자리에 앉게 되었어.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먼저 가던 나를 그가 따라왔어. 그는 내가 음악에 대한 열정은 넘치지만 가르침 받을 계기가 없어서 고민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사사한 선생님을 내게 소개해 주겠다고 말하더군. 그땐 거리가 멀어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내 머릿속에 꽤 깊게 남아 있었어. 4월 중순의 어느 날, 나를 꾸준히 괴롭혀 온 ‘낯선 느낌’은 극도로 커져서 이미 나를 잡아먹은 상태였는데 참석할 수업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서 잠에서 깬 그날, 마치 스위치가 탁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전구가 환하게 켜지듯, 내 복잡했던 머릿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단 한 가지 어떤 생각만이 남게 되었지.


‘음악을 전공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B 대학을 그만두고 세 번째, C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현실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었어야 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망망대해에 뗏목만 타서 던져질 나에게 그야말로 ‘나침반’이 되어 줄, ‘선생님의 존재’였어. 그때 에그버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나는 그를 통해 지금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야. 꽃엔 애정 어린 물과 따스한 햇볕도 필요하지만, 때론 쓰디쓴 비료도 필요하지. 지금의 선생님은 내게 그런 존재야. 선생님 없이는 이 도전도 없었을 거야. 그래서 에그버트에게 감사해.



얼마 전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봤어.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나는 벌써 몇 번이나 봤지.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영화라 자네에게 이 편지에서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오히려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하네만, 혹여나 기억하지 못할까봐 간단히 이야기하겠네. 매트릭스는 ‘지배’야.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들은 인간들을 효과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 가두었지. 인간들은 일생을 그곳에 갇혀 기계들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네. 「Matrix」(1999)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인간 저항군 모피어스와 네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야.


나는 매트릭스가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우리 현실에도 매트릭스가 분명히 존재해. 내가 느끼는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네의 공허하고 낯선 느낌에 대한 원인이네.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자네의 눈을 가리는 것이야. 속물들이 만들어 낸 허상.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 온갖 겉치레들.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 없이 그저 ‘갓생, 갓생’만을 공허하게 외치도록 만드는 허상이네. 그것은 우리들만의 잘못은 아니야. 나도 그들 중 하나였고 자네 역시 그래.


하지만 이젠 내겐 그런 이유로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로 보여. 허례허식, SNS, 껍데기, 편견, 야유, 냉소, 속물들. 이런 것들이 자네 속의 깊은 욕망을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있어. 용기.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야. 나 역시 두렵네. 하지만 진정한 용기란 그 두려움에 대한 강렬한 저항이네. 자네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자네가 침대에 누워 마지막 숨이 다 하는 날 자네를 찾아올 후회는 지금의 두려움을 초월하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시간 따위 없어. 그런 것들이 한 번뿐인 기회를 방해하게 둘 순 없네. 그러니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네오 (”Wake up, Neo.”)

2023년 6월 29일, 자네의 소중한 친구,

백(Baek)



친애하는 나의 친구, 상명대학교 학우들에게.



안녕하세요. 글 쓴 학생입니다. 이 글을 보신 많은 분들이 다음의 두 가지를 궁금해 하실 것이라고 예상하고, 또 실제로 궁금해 하십니다.



1.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의 이야기인가?


궁금해 하시는 것은 이해하나 제 글을 잘 이해하신 분이라면,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면,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것에 더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밝히자면, 유일한 픽션은 조지와 관련된 점입니다. 조지가 폴란드로 떠난 지 7개월이 지났다는 것은 픽션입니다. 조지는 폴란드로 떠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며 또한 일자리를 구한 것이 아니라,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미 귀국해 있습니다. ^^


2. ‘백’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도전


‘백’의 도전은 아래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1lkmRBXGmrXqafPUkkLqCg

‘백’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서는 위의 링크에서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습니다만 갑자기 링크를 첨부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도 이 글을 쓴 이유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통의 한 사람이 도전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기 위함입니다. 글의 내용에 공감이 되셨거나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한 번쯤 방문해보세요. 


글의 맨 앞에 함께 첨부한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입니다. 제가 바라는 ‘백’의 결말은 이 곡의 맨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끝까지 들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




그럼 학우 여러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 각자의 길에서 파이팅입니다. 아자아자!


2023년 7월 21일, 여러분의 친구,

‘한’(Han) 올림.





참고 문헌

Billy Joel - Piano Man

「Matrix」(1999)

「Good Will Hunting」(1997)


문의 사항은 아래 메일 주소로 연락주십시오.

ryanhan9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