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학교박물관 유물을 만나다-(68) 계당배상명기념관 재개관 특집⑤-계당 배상명 선생의 애장품 ‘비녀(簪:잠)’
- 작성자 학예사
- 작성일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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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장품은 설립자 배상명 선생의 애장품으로 일명 매죽잠(梅竹簪)으로 칭하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머리장식인 비녀이다. 비녀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영‧정조시대 사치를 금하는 발제(髮制)의 개혁에 따라 쪽진 머리가 일반화 되자 비녀의 사용도 점차 일반화되고 모양과 형태도 다채로워졌다. 비녀는 머리형태의 장식에 따라 용잠(龍簪), 봉잠(鳳簪), 원앙잠(鴛鴦簪), 오두잠(烏頭簪), 어두잠(魚頭簪), 매죽잠(梅竹簪) 등으로 분류되며 신분의 존귀에 따라 금‧ 은‧ 주옥은 상류층이, 나무와 각(角), 골(骨)제품은 서민층에서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류층의 부인들은 10월에는 용잠, 2월에는 모란잠, 3월부터 9월까지는 은매죽잠을 꽂는 등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멋을 내었다고 전해진다.
배상명 선생이 비녀를 수집하게 된 동기는 평생 여성교육에 헌신하셨던 점과 관계가 있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한국여성의 장신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애장품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비녀를 접하게 된 계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년째 되던 초겨울의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서였다고 전한다. 남색과 붉은색, 하늘색의 칠보로 장식된 봉황머리와 은 사양의 비녀대를 특징으로 하는 봉잠(鳳簪)과의 조우를 계기로 선생의 수집유물 대상은 이때부터 자기류에서 비녀로 바뀌게 되었으며, 비녀 외에도 머리에 꽂는 장식품인 빗치게, 뒤꽂이 등을 합하여 30여점이 넘는 머리 장신구를 수집하게 되었다.
선생이 가장 아끼는 비녀는 매죽잠이었다. 합금바탕의 비녀 머리 부분에 매화와 대나무의 칠보로 장식한 대형비녀인 매죽잠은 절개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던 조선 여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비녀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조선의 여인들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살할 때에는 반드시 매죽잠을 꽂았다고 하며 나라에서 열녀문을 내릴 때에도 매죽잠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본 소장품은 유물의 훼손 없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한국고전복식연구가 석주선 박사의 진품감정을 받은 소장가치가 뛰어난 전통 머리장식 유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