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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을 위한 지리학 연구..박수경 교수

  • 작성일 2023-08-30
  • 조회수 33092
커뮤니케이션팀


스트레스가 과다한 시대...


‘Healing’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사회와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힐링’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일상 깊이 파고들었다. 힐링은 마음을 위안하며,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배려와 위로받기 어려워지는 사회 현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사회가 각박해지고 생존 경쟁에 내몰린 이들을 중심으로 공감과 위로, 치유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이 힐링(치유)을 위한 사회, 경제, 문화, 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산업과 학문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지리학 영역에서도 힐링(치유)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건강한 삶에 관해 관심을 두고 치유에 관한 지리학적 접근을 위한 연구를 하는 교수님이 우리 대학에 계시다.


우리 대학 지리학과 동문이기도 한 공간환경학부 박수경 교수님을 만나 대학 시절 이야기와 연구 분야인 건강 지리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공간이 마음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


건강 지리학은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만, 캐나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발히 연구되고 있지는 않지만, 점차 연구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건강 지리학(geography of health)은 21세기에 등장한 의료지리학과 보건지리학과 구분되는 분야로 장소성(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집단적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그 생활의 기반이 되는 장소에 대해 가지는 사회적 의식)이 한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고, 확립하는데 중요해지면서 이 분야에 대한 학문적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교수님은 처음 건강 지리학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고, 의료 서비스 원격 진료 연구를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 지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공부하던 중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왔고, 학업과 일본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이 친구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친구의 어려움과 건강의 문제를 미리 알고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고 계신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음의 치유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됐고, 공간이 마음을 치료하는 것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이 건강 지리학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정신건강에 있어 대안적 치유 공간에 관한 연구


교수님께서는 정신건강에 있어 대안적 치유 공간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의의에 대해 알고자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역 커뮤니티에 형성된 치유의 공간에 대한 지리적 고찰’ 연구를 비롯해 △일상적 삶에서의 치유의 공간에 관한 지리적 고찰(심리상담 카페를 중심으로) △치유의 공간에서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인생학교, 길담서원, 아침 편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치유의 공간에서의 일상성 회복에 대한 지리학적 고찰(청소년 미혼모 시설 자오나 학교를 중심으로) △정신건강을 위한 대안적 치유 공간의 지리학적 의의(일본 카와사키의 도라지회를 사례로) △유학생 관점에서 바라본 학교 밖 소속감에 관한 건강 지리학적 연구 등‥ 


교수님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겪었던 어떤 슬픔이나 어려움에 대해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이를 어떻게 해소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연구’했고, 연구 대상이 사회적 소수자 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대상이 되다 보니, 대상을 찾고 조사를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연구에서는 연구를 위해 유가족을 찾아가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2~3년 쯤 지난 시기였는데, 처음 그들을 찾아갔을 때 반응은 “찾아오지 말라” 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들은 기대고 싶고, 상황을 알려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데, 당시 정치인을 비롯한 연구자들도 당시 그들의 어려운 심리와 상황을 이용했고,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더 이상 그들을 찾지 않는 등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연구를 위해 그들을 찾아가는 그것조차도 너무 죄송했고, 연구를 계속해야 할 지를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에는 어디에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지리학 분야에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관해 관심이 있었다는 흔적조차도 남지 않을 것 같아 계속해 연구를 진행하셨다고 한다. 


또, 일본 카와사키의 고령자 재일한국인 모임인 도라지회를 사례로 연구할 때는 고령자 할머니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래도 불러드리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도 대접하는 등의 노력으로 할머니들과 친분을 쌓고 나서야 연구도 하고, 논문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 미혼모 시설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어려운 환경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시설 내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고 무거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놀랐던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사람을 통해 상처받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 회복될 수밖에 없고, 완전히 상처가 회복되지는 않지만, 공동체 속에서 회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라며, 교수님께서는 연구를 통해 ‘치유의 공간 속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리학을 눈에 보이는 공간적 의미로 이해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흔히 가진 표면 의식, 내부 의식, 무의식 등이 어떻게 보면 하나로 각각 나누어지는 지리적 단위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공간이 진짜 공간일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투영된 어떤 것이냐에 따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빴던 학생


박 교수님은 우리 대학 지리학과 96학번 졸업생이다. 


학생 시절에 관한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빴던 학생”이었다 라고 설명했다.


“제가 공부하던 2000년 전후 시기에는 우리 집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IMF도 있었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도 있었고….”


학생 시절 교수님도 그러한 경제적 영향을 받았고,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도 겪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근근이 학업을 이어갔다고 했다.


석사와 박사과정 중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려웠으므로 시간을 쪼개가며 아르바이트로 생계와 학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도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대학 시절 ‘쥐의 뼈를 추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상황이 급했던 터라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화학 처리된 쥐에서 뼈를 추려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토를 하는 등 어렵게 겨우 참아내며 일했지만, 나중에는 쥐의 근육과 골격 등의 구조를 이해하면서 일에 속도가 붙었다고 한다. 친구 몇몇이 함께했는데, 나중에는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쥐 뼈를 추리는 등의 일은 누구나 어렵고 힘들게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당시 교수님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이야기했다.


또, 교수가 된 후에는 수업 중 졸린 학생이 있으면 종종 옛날 경험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쥐 뼈를 추리는 아르바이트는 학생들의 잠을 깨우는데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해서 이후에도 좋은 역할을 하는 아르바이트였다고 이야기했다.



힘든 시기를 먼저 경험한 어른으로서...


교수님은 수업 중 본인이 겪었던 어려웠던 경험과 고민에 대해 학생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는 편이다. 어느 날 기말고사 시험지에 어떤 학생이 이런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교수님이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지만, 이렇게 교수가 되어 우리 앞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되었고, 또 위안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일찍부터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치유”라는 화두를 계속해서 탐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교양 수업에서는 많은 학과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학 생활이 아닌 집안이 힘들거나, 폭력에 시달리는 등 혼란 속에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교수님도 어린 시절 겪었던 여러 문제와 어려움을 경험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소연하거나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학생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단계별로 도움을 주거나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교수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높은 산이기보다 나지막한 언덕이 되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 말은 일본 유학 시절 힘들 때마다 들었던 종교적 문구인데, 어마어마하고,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를 하는 대단한 학자이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학생들이 교수님을 만나 인사하기를 꺼리지 않는...그냥 선생으로 남고 싶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교수로서 엄청난 사회적 명예와 권력을 갖추고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지만, 학생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커피 한잔을 내밀면서 나도 너처럼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선생으로 남고 싶어요”



인생의 기억 중 가장 행복했던 대학으로 돌아와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에게는 가까운 선생으로서. 

또, 치유의 공간을 중심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학자 박수경 교수님의 열정 에너지 총량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